[인물] 우당 이회영

우당 이회영 [, 1867.3.17~1932.11]

한국의 노블레스 오블리주(noblesse oblige)를 보여준 인물.
-1910년, 합일합병이 이루어진 해 12월 30일 우당 이회영 6형제의 일가 40여 명은 압록강을 건넜다. 왕족의 집안으로 살아오던 그의 집안은 전재산 40만원을 일본 몰래 조금씩 청산해 만주로 망명해갔다. 당시 쌀 한 섬이 3원임을 감안할 때, 현재의 600억원에 준하는 금액이다. 전재산은 모두 독립운동자금으로 쓰였으며, 말년에 배고픔을 달래기 위해 피리를 불고, 옷을 전당포에 맡기느라 외출할 만한 옷 한 벌 갖추지 못할 정도로 극심히 가난한 생활을 했다.
-안창호, 이동녕 등과 청년학우회를 조직했고, 중국 지린성 신흥강습소를 설립했다. 신채호와 함께 무정부주의운동을 벌이며 분열된 임시정부의 단합을 위해 조정역을 담당했다.
-1932년11월 17일 내부첩자의 정보누설로 일본경찰에 붙잡혀 고문을 받다 숨을 거뒀다.
-다섯 형제 모두 독립운동 도중 순국하였으며, 막내 이시영만이 살아 해방된 조국에 귀국하여 초대 부통령을 지냈다. 국가정보원 원장을 지낸 이종찬과 국회의원 이종걸이 이회영의 손자이다.
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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by ko-un | 2008/05/18 00:58 | beyond silence | 트랙백 | 덧글(0)
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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